이 글은 서울대학교 김용익 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부자가 해서는 안 될 일’ 에 대한 의견이다.-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
(원문 링크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03304.html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프레임 오류가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글이다. 또한 합리적, 이성적으로 세상을 파악해야 할 과학적 프레임에 오류를 야기하는 심적 동력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기에도 적절한 글이다.
1. ‘80대 20’의 사회가 마음을 울리더니 어느새 1%에 대한 99%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김용익 교수는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여느 좌파와 마찬가지로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프레임으로 글을 시작해 버렸다. ‘사회’나 ‘희망’,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부자’라는 말은 잘 정의되지 않는다. 상위 50%를 부자라고 할 수도 있고, 8:2로 나눌 수도 있고, 이 글에서와 같이 99:1로 구분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부자의 정의는 ‘나 보다 돈이 많은 사람들’ 이지만, 일단 상위 1%를 부자라고 해 보자. 이러면 김 교수는 부자에서 제외되나 보다.
2. 탈세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탈세는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김교수의 말처럼 상위 1%의 탈세만을 선별적으로 문제삼기 위해서는 그들의 탈세가 일반의 탈세와 견주어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야 한다. 그런가? 자영업자들의 소득 포착율은 60%선이다. 30%이상의 소득에 대한 세금이 탈루되고 있다.
(관련 자료 :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07/12/2007121764338.html )
그래서 상위 1%의 탈세가 일반인들(여기서 탈세할 일이 없는,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소득 하위 50%정도의 사람들은 제외한다.)의 탈세율을 확연히 초과한다는 증거가 없다면, 탈세는 상위 1%부자에게만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탈세를 문제 삼고 싶으면 (1% 대99%)가 아니라,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고 세금을 내는 사람) vs (소득을 숨기고 세금을 안 내는 사람) 이라는 깨끗한 프레임이 있다. 또는, (월급쟁이 대 자영업자)의 프레임으로, ‘자영업자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유리 지갑으로 불리는 봉급 생활자들은 거의 100% 세금을 잘 내고 있는데 그 이유가, 우연히도 봉급 생활자들은 다 정직한 사람들이고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30%정도는 부도덕한 탈루범이라서 일까? 봉급 생활자들의 소득을 비밀에 부치고 자진 신고하라고 했을 때도 이들은 모두 정직하게 소득신고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보이는 것만큼 대단한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영업자나 부자들이 세금을 빠져나가는 것은 그들이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1%와 99% 중 누가 더 정직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설사 부자가 부도덕하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난한 자가 도덕적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도덕성에 있어서는, 1%든 99%든 내 생각에는 둘 다 거기서 거기다.
카드 사용으로 자영업자들의 세원포착율이 10%정도 늘었다고 한다. 탈세든 다운계약서든 타겟을 정하고 편파적으로 비난하기 전에 방법을 강구할 문제다.)
3. 혹시 청와대에 있거나 국회의원이라면 집 사는데 예산을 쓰거나 … 그건 당신들의 돈이 아니다. 시장의 부자들이 세금을 안 내고 정부의 부자들이 재정을 축내면 나라에는 뭐가 남겠나?
아주 좋은 말씀이다. 이건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정치인들 뿐아니라, 모든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돈이 많은 정몽준 의원이나 이명박 대통령 뿐 아니라 집이 가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주 노동당의원들도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이 혈세를 개인적으로 쓰는 것은 정치인들이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예는 소득 상위 1%와는 무관하다. 교수님도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정부의 부자들’이라고 표현한 듯 하다. 그런데, ‘정부의 부자들’은 대체 무슨 말인가? ‘부자’라는 말을 끼워넣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요상한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를 턱이 없다. 서울대학교에서 수재들을 가르치는 김 교수는 ‘교수사회의 부자’란 말인가?
4. 피부 관리에 1억씩 쓰지 마라.
김교수께서는 장애아를 둔 나경원 의원의 피부과 비용 영수증을 믿을만한 언론을 통해서 확인하시고 이런 글을 쓰기 바란다. 설사 나경원 의원이 1억을 자신의 피부관리에 다 썼다 하더라도 김 교수께서 하라마라 할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어디에 쓰는지 관찰하는 일은 김교수 같은 교양있는 사회의 지도층이 할 일이 아니다. 누가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고급 피부 관리를 받는 장면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내가 그를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드러낼 뿐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의 일과 취미에 집중하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비 행태에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그런 일에 시간낭비 하지마라.
5. 두들겨 패고 맷값을 주지 마라.
두들겨 패기만 하라는 뜻인가? 사람을 패고 나서 돈을 던져주는 일이 막장 드라마 만큼 시선을 끄는 소식이긴 하지만, 이 사태의 근본은 ‘폭력’이다. 폭력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나쁜 일이다. 내가 알기로 이런 일이 단 한 건 있었다. 상위 1%가 99%보다 더 사람을 잘 때린다는 증거가 없다면 이런 말은 참았어야 했다. 폭력에 유난히 알러지가 있다면, 얼마 전 경기도에서는 조폭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며 지랄을 했다는데 그들에게도 한마디 하시기 바란다. 어린이 집에서 아이들을 패는 선생들을 핑계로 우리나라 99%는 썩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침 드라마 즐기는 교수님이 아니라면 중심을 잡자.
6. 군대는 가라. 감옥가면 아프지 마라. 공무원 검찰 언론을 매수하지 마라.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두고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상위 1%정도의 재력이 있어야만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상위 1%가 99%에 비해 차별적으로 저지른 비리와 잘못이고 교수님의 빈부 프레임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합리적이다. 인정한다. 전체 글에서 부분적이나마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6번 뿐이다. 그러나 특정 범죄가 아니라 일반적인 법치의 관점에서 보면 99%가 1%에 비해 범죄율이 더 높다.
7. 불쌍한 경비원 아저씨, 청소부 아줌마 무단히 자르지 말고 월급 좀 올려달라.
경비원이나 청소부 아줌마를 해고하거나 적은 월급으로 고용하는 일은 누가 보아도 딱한 일이다. 이들은 잘리면 거리로 내몰리고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돈도 많은 사람들이 월급 몇 십만원 더 줘도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감성을 잠시 접어두고 이성으로 한번 바라보자.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고용당하지 않으면 더 열악한 생활을 해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을 해야 한다. 누가 지금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가? 교수님도 나도 이들을 고용하고 있지 않다. 교수님이 분개하고 훈계하고 있는 그 부자들이 이들을 고용하고 있고, 이들의 생활은 그들에 의해 그나마 지탱되고 있다. 수입이 턱없이 미흡하다. 맞다. 하지만 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수님이나 나같은 구경꾼들이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더군다나 고급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경비원의 월급을 올려 주라는 교수님의 조언은 어떤 자존심이 강한 경비아저씨를 부끄럽게 만들고 그를 모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혼자 착한 척하지 말고 가만 계시라.
파키스탄에는 법이 있지만, 아동노동이 아직도 만연해 있다.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분개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 불쌍한 아이들 중 하나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진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저임금으로 아이들을 착취하는 기업을 규탄하지만, 이런 탐욕스런 회사라도 없다면 그들은 굶거나 테러단체로 흘러간다.
8.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부르짖지 말라.
그렇다. 이 말은 계층간 이동이 제한된 계급사회에서나 어울리는 말이다. 현대 경쟁 사회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또 부자도 쉽게 무너지는 구조다. 부자는 늘 부자고 가난한 자는 늘 그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른다. 자유기업원 자료에 따르면, 80년대 초 10대 대기업 중 현재 4개 기업만 그 안에 남아 있다. 매출액 대비 50대 기업 중 오직 26%만 지속적으로 포함되어 있고, 자수성가한 기업인들도 많다. 닭고기로 유명한 하림은 병아리 11마리로 시작했고, 숙취 해소 음료 여명808의 그래미, 엔씨 소프트, NHN, 뽀로로의 아이코닉스 등 수 많은 회사들이 맨땅에서 일어났다. 미국에서도 현금성 자산 100만불 이상의 부자중 80%가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9. 당신들이 조금만 베풀어 주면 입시지옥도 청년실업도 중년 과로사도 노인 자살도 비정규직 차별도 없어질 것 같다.
그렇지 않다.
10. 삶이 오죽 팍팍하면 젊은 것들이 새끼를 못낳겠다고 하겠나?
인간들은 삶이 팍팍할 때 더 많이 출산한다. 아프리카 빈국들이 삶이 넉넉해서 새끼를 까대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들의 삶이 우리보다 팍팍하지 않아서 자손을 많이 본 것이 아니다. 삶이 팍팍하다는 말은 삶이 상대적으로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이지 절대적으로 더 팍팍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경제 성장이 부침이 있지만, 우리는 과거에 비해 확실히 조금씩 잘 살고 있다. 교수님은 삶이 불만인 사람들을 선동하지 말라.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기록적인 빈곤을 극복한 우리 선배 세대가 들으면 귀싸대기를 맞을 지도 모른다.
우리 교수님의 글이 뒤죽 박죽이 된 것은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좌파적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믿는 양과 안 믿는 양으로 나눠서 보고, 여성주의자는 남녀로 구분하며, KKK는 피부 색깔로 사람을 나눈다. 그럼에도 이 글은 큰 인기를 끌고있다.
사회주의 운동이 대중성을 획득하는 심리적 바탕에는 질투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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